| 강정인 기자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과 금정구의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미술작품을 한자리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구청이 있다. 금정구(구청장 원정희)는 지난달 20일부터 내년 5월 19일까지 6개월간 구 청사 내에 금정구의 자연, 도시풍경 등 지역 풍물을 소재로 한 수준 높은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미술작품 전시는 경직된 관공서 분위기를 바꿔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고 민원인에게는 다양한 작품세계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며 작품을 전시할 공간과 기회가 부족한 작가들에게는 대중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작품은 김민정 작가의 ‘오륜동’, ‘회동호수와 통하다’, ‘오륜대’, 김수길 작가의 ‘금샘의 빛’, 문인상 작가의 ‘범어사의 일상’, 박경효 작가의 ‘금정산 추경1’, ‘금정산 추경2’, 박운섭 작가의 ‘힐링-범어골’, ‘힐링-회동지’, 김성룡 작가의 ‘공의 뜰’ 등 총 10점이다. 금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금정문화원에서 주최한 ‘금정풍물전’ 선정작 8점이 포함돼 있는 이번 작품들은 갤러리형 전시 공간으로 꾸민 구청 본관 2~7층 및 의회 2층 복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민원처리를 위해 구청을 방문한 한 구민은 “미술작품은 미술관을 따로 방문해야만 접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민원도 해결하고 평소 친근한 주변의 모습이 옮겨진 예술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금정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범어사, 회동수원지, 오륜대, 금샘 등 금정구 명소의 아름다운 모습을 작가의 풍부한 감정으로 재구성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앞으로도 딱딱한 관공서 이미지를 벗고 청사 내 자투리 공간을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해 구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 고흐의 숲, 종이에 유성볼펜 색연필 아크릴릭, 170 × 120 ㎝, 2008
◼︎ 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 |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나무로 변신한 이 남자.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 속 얼굴이 친숙하게 느껴지리라. 남자는 전설의 화가로 숭배 받는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닌가. 반 고흐의 몸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고 그 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이 그림은 너무도 강렬해서 좀처럼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김성룡은 왜 나무로 변신한 반 고흐를 그렸을까? 반 고흐의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저 나무들처럼 영원히 살아있다는 뜻일까? 혹은 반 고흐가 자기희생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의미인지도.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겠지만 반 고흐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반 고흐가 열정적으로 사랑한 태양빛과 그의 상징인 노란색에 에워싸인 모습으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하긴 두 예술가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고, 차별화된 독창적인 화풍을 발전시켰고, 책을 좋아하고 글재주도 뛰어나다. 치열하게 작업하고 집중력도 강하다. 독신인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예술관도 비슷하다.
김성룡은 “예술이란 눈으로 본 것들이 예술가의 뛰어난 감수성에 의해 걸러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고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과 풍경 속에 우수에 젖은 감상보다는 비극적인 고통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이 남자는 무언가 강렬하게 느끼고 있구나. 매우 섬세하고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야.”
다음번에 김성룡을 만나면 묻고 싶다. 감성의 자양분이 되는 숲, 창작의 고통을 치유하는 숲이 되고 싶은 갈망을 반 고흐의 모습에 투영시킨 건가?
◼︎ '볼펜 화가' 김성룡 초대전
◼︎ 수만 번 그어야 작품 완성, 현실 폭력성 강렬하게 표현 | 이경달 기자
볼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김성룡 초대전이 9월 21일(일)까지 갤러리청담에서 열리고 있다. 김성룡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구글이 세계 유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마련한 구글아트프로젝트에 소개됐다. 또 그의 작품 '청산에 눕다'는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시공사 발행)에도 수록됐다.
김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이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1980년대 역사의 현실성에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실험한 그는 2000년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리얼리즘 미학을 구축했다.
작품 세계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독특하다. 그는 주로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많은 노동과 인내를 요구한다. 연필과 달리 볼펜은 잘못 그은 선을 지울 수 없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보통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한 달가량 소요된다고 하니 노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작가는 볼펜의 노동이 주는 고통을 즐기고 있다. 그는 "수만 번을 그어야 그림이 완성되지만 뼈를 심는 것처럼 단단하게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재미가 있어 볼펜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볼펜으로 대상을 치밀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그림이 주는 일반적인 정서와 사뭇 동떨어져 있다. 그림을 통해 즐겁고 아름다운 미적 감흥을 느끼려는 관람객들은 여지없이 그의 작품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담배를 물고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성, 신체 일부가 기계화되어 있는 인물상은 낯설다 못해 섬뜩하고 괴기스럽다. 이는 김 작가가 인간의 모습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강한 폭력성이 엿보인다. 잠재의식 속에 묻어 두어야 할 폭력성을 공공연하게 불러내는 그의 그림은 존재를 송두리째 거부할 만큼 강력하다. 김 작가가 한국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작가는 현실이 비현실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마에 'DMZ'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소녀는 그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준다. 김 작가는 "우리에게는 환영처럼 분단 이데올로기가 박혀 있다. 그림이 기괴해 보이지만 현실은 소설이나 그림보다 더 병리학적이고 초현실적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시대의 폭력성에 당당히 맞설 것을 제안하다. 그는 정글 같은 잔인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으로 폭력에 호응하거나 침묵하는 대신 폭력에 저항하라고 말한다. 인간이 역사에 저지른 폭력성을 고발하는 그의 작품에는 아이러니하게 '흰 그늘'이 서려 있다. 모순 형용인 '흰 그늘'은 죽음과 공포에서 벗어나 환희와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다. '흰 그늘'은 부조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극복하려는 작가의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암굴, 판넬에 혼합재료, 165 × 125 ㎝, 2013
갤러리청담 ‘김성룡 개인전’
볼펜·유성펜으로 그린 그림 선보여…9월21일까지 | 김수영 기자
볼펜화가 김성룡의 그림은 어둡고 음울한 느낌을 준다. 볼펜과 유성펜으로 만들어낸 무수한 선의 흔적들이 남긴 형상은 보는 이에 따라 약간의 기괴한 이미지마저 느끼게 하는데 볼펜이 지나간 자국이 만든 검은색과 그 여백의 흰빛이 뒤엉켜 어우러지면서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그의 작업에 대해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종이에 유성펜으로 집요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김성룡의 그림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불러일으킨다. 즉 그의 그림은 억압의 저편에서 건져올린 사이보그의 태를 뒤집어쓴 폭력과 성애를 상기시킨다”며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어야 할 폭력성을 공공연히 불러오는 그의 그림은 존재를 송두리째 거부할 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김성룡 작가는 20년 넘게 격동의 근대화와 그 정치성이 야기한 개인의 상처, 즉 트라우마에 주목해왔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한 개인의 초상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에는 ‘흰 그늘’ 같은 것이 서려있다. 흰 그늘은 인간의 영성을 성숙시키는 카오스적 단련기제이다. 공포와 환희, 죽음과 삶, 어둠과 빛처럼 서로 배치된 것들이 이종교합하듯 한데 어울려야만 싹이 튼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이 아니다. 신체의 일부가 기계화되어 있거나 머리가 잎들로 무성하게 변해있다. 때로는 소녀의 두상에 남성의 신체일부가 자라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이런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인간의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깊숙한 곳에서 살아숨쉬고 있는 괴물성을 드러낸다. 쉽고 친근하지만은 않은 김성룡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청도의 갤러리청담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청담 김성락 대표는 “김성룡 작가의 흰 그늘은 공포, 죽음, 어둠의 색채들로 구성된 회회들이 환희, 삶, 빛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어떤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 의지는 현실이라는 리얼리티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부조리한 세계의 찰나를 붙잡으려는 작가의 세계인식과 맥이 닿아 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9월21일까지.
● 사유의 공간
가나아트부산은 2013년의 첫 기획전시로 부산 출신의 작가들로 구성한 ‘사유의 공간展’을 진행한다.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디지털세계에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삶과 그 가치를 작품화하는 작가 5인의 흥미로운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순히 작품을 보고 반응하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작품의 본질을 찾아 무수한 시간을 고뇌해온 인내의 여정에 대해 관람객들과 함께 소통하고자 한다.
볼펜과 연필이라는 소박한 재료를 이용하여 수없이 반복되는 선의 중첩으로 작품을 일구거나, 무수한 점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등 자아성찰 또는 고된 수행과도 같은 그들의 작업은 예술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불리는 정직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모든 작가들이 창작의 고통과 맞서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처럼 치열한 노동이 엿보이는 작품들은 그것을 창작하는 과정의 행위자체가 예술이며 관람자로 하여금 그 자체로 숙연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작품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아우라는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어 우리의 인식을 완젼히 뛰어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그들의 작업은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 뿐 아니라 그 이면의 세계까지도 사유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약 4주간의 전시기간 내에는 작가들과 함께 그들의 작업세계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하여 작가4인의 흥미진진하고도 심도 깊은 이야기를 관람자들과 함께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밤의 계단, 종이에 유성볼펜 색연필, 125 × 95 ㎝, 2003
◼︎ 가나아트부산 '사유의 공간'展 | 임은정 기자
- 연필작가 김은주·볼펜화가 김성룡
- 임영선 박자현 이선경 등 5인의
- 자아성찰·고된 수행 결과물 직면
회화작가 김은주, 임영선, 김성룡, 박자현, 이선경. 이름과 작품이 연결되지 않더라도 이들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강렬한 이미지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볼펜과 연필이라는 소박한 재료만으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의 중첩을 통해 작품을 일구거나, 무수한 점을 찍어 이미지를 표현하는 등 이들 작가의 작업은 자아 성찰 또는 고된 수행과도 같다. 예술이라는 화려한 이름이 정직한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게 해 준다. 다섯 이름의 또 하나 공통점은 모두 부산 출신이거나 부산에서 작업하는 30~40대 젊은 작가라는 점이다.
가나아트부산(해운대구 중동 노보텔 4층)이 작가 5인의 흥미로운 작품 30여 점으로 꾸민 '사유의 공간' 전을 선보였다.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삶과 그 가치를 작품화하면서 관람자를 숙연하게 한다.
'볼펜화가' 김성룡. 매서운 눈빛이 화면 밖을 쏘아본다. 날카로운 볼펜 필치로 내면의 아픔을 극도로 끌어올린 듯한 그 눈빛,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볼펜이 그리는 거칠고 날카로운 선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작품 속 인물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김성룡의 작업에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으로 구겨진, 찢어진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미술평론가 박영택)
10여 년간 연필로 집요하게 작업해온 김은주 작가. 연필 선의 수없는 중첩으로 종이에 요철이 생길 정도로 작업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고요하지만 거대한 에너지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힘을 느끼게 된다. 종이에 펜으로 점을 찍어 인물을 담아내는 박자현의 작업은 점묘로 표현된 극사실주의 회화다.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점을 찍는 작업과정은 여느 젊은 작가와는 다른 장인적 기질이 엿보인다. 화려한 색채 대신 선택한 무채색, 그리고 생략된 눈동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상징한다.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심리 상황을 드러내는 이선경. 두 눈을 뜨고 강렬하게 응시하는 인물은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에 관한 독백이자 넋두리다. 임영선은 몽골, 티베트, 캄보디아 등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보는 작가다. 한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보내는 어린이들을 현지 풍경과 오버랩해 화폭에 담는다. 아이라이너용 보다도 가는 0호짜리 붓으로 100호~300호 규모의 얼굴을 완성했다. 마치 점묘화처럼 조밀하게 붓질을 가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드러낸다.
가나아트 나도경 점장은 "이들 작품은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어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면의 세계를 사유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다음 달 3일까지.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저녁연주, 종이에 유성볼펜과 아크릴릭, 90 × 110 ㎝, 2008
◼︎ 볼펜화가 김성룡 9월 18일까지 아리랑갤러리서 개인전 | 이상헌 기자
맹수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정글 같은 잔인한 이 세상을 건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정면에서 폭력에 저항하거나, 폭력에 호응하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볼펜화가 김성룡의 작품은 직접적인 현실발언 쪽이었다. 인간이 역사에 저지른 폭력을 고발해왔던 그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리랑갤러리에서 9월 18일까지 열리고 있는 '김성룡 개인전-검은 회오리의 숲'에서 그 단초가 보였다.
그는 주로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연필은 지우거나 물감은 덧칠할 수 있지만 그가 주로 사용하는 볼펜은 자칫 잘못 선을 그어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찢어버리는 수밖에. "핏줄처럼 그어진 볼펜의 선을 통해 몸 속의 기가 빠져나가는 경험을 했다"고 할 정도로 지독하게 선을 그었다. "수만 번은 그어야 그림이 그려지지만 뼈를 심는 것처럼 단단하게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재미가 있어 볼펜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강렬한 에너지에서 분출하는 그런 지독함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림은 부드러워졌다. '저녁연주'라는 작품에서 나무에 누워있는 맹수의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다. 기왕의 작품에서 봐왔던 반항적이고 히스테릭한 눈동자가 아니다. 호랑이 등에 앉아서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는 아이 때문일까? 호랑이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김성룡은 스스로 음악의 선율로 심연의 상처를 다독이고 있는 거다.
"동물은 인간에게 밀려난 약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 상처를 불러내 어루만지는 제사의식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적대하지 않고 공생하는 영역을 찾고 싶기도 했어요."
교복입은 소녀가 사슴을 안고 있는 그림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데 소녀의 이마에 분홍글씨처럼 'DMZ'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요즘 관심이 있는 게 DMZ에요. 환영처럼 우리에겐 분단 이데올로기가 박혀 있지요. 그림이 기괴해 보이지만 현실이 더 병리학적이고 초현실적이지요." 맞다. 현실은 소설이나 그림보다 더 무시무시한 정글이기 때문이다.
소녀, 종이에 유성볼펜과 아크릴릭, 150 × 70 ㎝, 2006
◼︎센텀시티 아리랑갤러리 개관 기념전
김성룡·성유진·줄리안 오피 3인전 | 이상헌 기자
개관전은 새로 문을 여는 화랑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전시다. 18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83번지 센텀Q상가 111호에서 개관전을 여는 아리랑갤러리(대표 신은영)는 집요함이란 화두를 품었다. 8월 5일까지 열리는 개관전은 '집요한 표현의 세계-Face in Drawing'전. 영국의 작가 줄리안 오피, 볼펜화가 김성룡, 콩테화가 성유진의 얼굴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았다.
볼펜으로 수만 번을 그어서야 형태를 드러내는 김성룡, 천 위에 크레용과 비슷한 콩테로 집요하게 고양이를 그리는 성유진, 픽토그램처럼 단순화된 그림을 위해 집요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영국 작가 줄리안 오피. 세 작가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집요하게 대상을 파고들어가 밀도 있는 작품을 내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리랑갤러리가 개관전으로 이 세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한 것도 그런 집요함을 갤러리의 운영 철학으로 삼겠다는 것. 개관전에는 줄리안 오피의 평면회화 1점과 LCD 영상 스크린 3점, 김성룡의 볼펜회화 8점, 성유진의 콩테 그림 4점과 천으로 만든 부드러운 조각 10여점이 전시된다.
숲의 정령_종이에 유성볼펜과 혼합재료, 110 × 80 cm, 2007
| 김상훈 기자
한 남자의 얼굴이 이상합니다. 분명 사람의 얼굴인데 머리가 숲으로 변해갑니다. 한 손에는 흰 새를 안고 있고 또 다른 손은 번쩍 들고 있습니다. 번쩍 든 손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뭔가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파괴돼 가는 자연을 치유하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묻어납니다. 남자는 인간의 모습을 뛰어넘어 숲의 정령처럼 다가옵니다.
그가 소중하게 안고 있는 흰 새에 눈길이 머뭅니다. 순결의 상징인 흰 새는 그가 꼭 지키고 싶은 자연의 원형이 아닐까요?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빚지고 있지만 이를 잊은 채 자연에 더 많은 것을 요구 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의 눈이 너무 슬퍼보이네요. 현대인들에 의해 파괴된 자연이 안타까워서일까요? 그림은 부산 작가 김성룡의 초대전(6월9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와인바갤러리)에 출품된 '숲으로 보다' 입니다.
소녀, 종이에 유성볼펜과 아크릴릭, 125 × 95 ㎝, 2007
| 김상훈 기자
참, 기묘한 그림들이었다. 볼펜과 유성펜으로 만들어낸 무수한 선의 흔적들, 어둡고 음울하게 보이는 화면 배경, 몽환적인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인물들, 한쪽 팔이 기계인 소녀들. 김성룡(사진)의 그림 안에는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상상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에서 볼 수 있음 직한 이미지였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은 사이버 세계 속 인물입니다. 요즘 많은 청소년이 사이버 세계에 심취하고 있죠. 현실 세계에서는 도덕적 규제, 제도적 억압의 틀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을 망각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죠."
화면 속 인물들은 사춘기의 일탈행위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거벗은 소녀의 머리에서 남성의 성기를 닮은 듯한 뿔이 돋아나고, 소년의 어깨 뒤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난꽃이 활짝 피었다. 무의식 속에 내재된 인간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들을 화면 위에 토해 놓았다.
한쪽 팔이 기계인 소녀들은 마치 사이버 여전사로 보였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 사이보그였다. 가상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이미지인데 미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작가는 "지난 2003년부터 사이버 세계 인물 이미지를 담아 왔는데 앞으로의 작업 방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그림의 갈래는 '숲시리즈'. 인간의 얼굴이 숲으로 덮여 있는 모습인데,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있다가 나왔을 때 자연의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과 잔상이 인간의 신체에 드리운 모습이다. 몽환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들 역시 작가의 내면 세계를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가 1990년대 초 부산에서 그룹 '해빙' 활동을 통해 다양한 재료와 매체 활용 등을 시도했고 리얼리즘, 마술적 사실주의, 환상적 초현실주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에 심취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고 이를 화폭에 옮기는 작업에 지나치게 열중한 결과 그는 최근 2년간 극도의 신경쇠약과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힘겹게 넘어온 고초를 겪었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들이 한층 더 농밀해 보이는 까닭이다.
그의 작업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고단한 과정이다. 볼펜과 색연필로 무수한 선을 긋고 아크릴 채색을 하는 힘겨운 노동 끝에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에 많은 인내를 요한다.
"한 장의 종이 위에 선을 긋고 호흡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영성의 세계가 화폭 위에서 파동칩니다. 현실과 몽환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견하는 고요함 속의 마성(魔性)을 들여다보는 것이죠."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김성룡의 독창적인 그림은 삶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고 패턴화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룡의 '보이지 않는 신체전'이 25일까지 수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6년 만의 부산 전시. 2003~2007년 작품 28점.
| 이동권 기자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고통의 시간들을 그림으로 옮긴 듯한 작가 김성룡의 '존재의 폭력, 초이성의 공간'전이 6월 9일까지 와인바 갤러리 화수목에서 열린다.
종일토록 몸을 파묻고 앉아 슬픔을 잉태하면서, 때론 공허한 빛으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 속에서 탄생한 듯이 보이는 그의 그림은 자유롭게 떠돌고 웃으며 살면서도 무겁게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잔잔하게 음미하도록 만든다.
이영철 큐레이터는 "작가 김성룡의 그림들은 현실의 장막을 찢으며 존재가 드러날 때의 날카로운 야수적 이빨, 존재의 폭력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면서 "그것들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도화선"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그림은 보자마자 우리 시선의 기계적인 접촉은 전기적인 에너지로 재빨리 변환되고, 보는 이의 근육은 긴장하며 신경은 더 많아진다는 것.
아울러 이 큐레이터는 "그림을 좀더 반복하여 볼수록 다양한 선들이 꿈틀거리며 춤을 추고 예리한 선들은 천천히 속력을 내다 때로는 돌풍처럼 몰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불규칙적인 파선을 형성한다"면서 "회화적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부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 외부의 힘들에 맞서, 그리고 예술의 인습적 역사 너머 초이성의 공간을 답사하려는 그의 고투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김성룡 작가는 "이번에 전시되는 화수목이라는 이름의 건물은 기존의 갤러리들과는 다른 조금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작품을 설치하고 제작하는 문제로 지금까지의 전시와는 다르게 심혈을 더 기울였다"면서 "작품의 재료는 캔버스와 전통의 수제지인 장판지에 아크릴 물감과 유성볼펜, 먹과 석판화 색연필"이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김 작가는 "이번에 보여줄 작업은 존재론적이며 인식론적이고 실체론적인 생각의 근간을 다루고 있다"면서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얼굴의 부분이 나뭇잎으로 가리워져 있거나 형상의 윤곽이 흐릿한데, 이들은 생의 중의적 경계에서 스스로를 출현시키는 형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장의 종이 위에 선을 긋고 호흡을 할 때에 보이지 않는 영성의 세계가 미묘한 작용으로 공간에 파동치며 이 공간의 미묘함은 현실이라는 몽환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응시하는 고요함 속의 마성"이라면서 "모쪼록 이 전시에서 관람객과 나의 접촉점에서 관조의 열림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톡톡 튀는 기획으로 미술인들의 시선을 끌어온 사비나미술관이 이번에도 예사롭지 않은 전시를 마련했다. 22일까지 열고 있는 ‘두 젊은 예술가의 〈내면의 초상〉’전은 두 남녀 화가가 들여다본 인간의 내면과 그 깊은 곳에 똬리 틀고 있는 고독감을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전시회다.
참여작가는 원혜연·김성룡씨. 감각적인 작품으로 서울과 부산 화단에서 각각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먼저 원혜연씨. 얇은 붓으로 그리고 지우길 반복한 그림을 낸다. 사지가 없는 인물은 어깨가 처진 데다 우수에 찬 표정, 힘은 없어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응시가 특징이다. 잠시 왔다 사라지는 존재의 시름을 관조하듯, 그러나 매순간을 섬세하고 따스하게 포착한 그림이다. 김성룡씨의 시선은 강렬하다. 섬뜩한 공포가 느껴지는 매서운 눈길이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비쳐진다. 작품 속 주인공은 아직은 미성숙한 청소년들. 교복 입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비열하고도 흉측한 시선으로 내면의 폭력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바로 우리를 향해. 유성볼펜으로 날카로운 선을 그리고 파스텔·색연필·물감 등으로 특유의 질감을 만들어 낸다.
무제, 종이(두께8파운드)위에 혼합재료, 160 × 97.5㎝, 2002 (전시도록스캔본)
| 김건수 기자
인간 내면 잠재된 성적 욕망,혹은 마성(魔性)적 본능을 소재로 고독한 현대인의 정신적 상흔 등을 십수년 동안 볼펜이라는 매체로 표현해온 김성룡은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02-736-4371)에서 22일까지 근작들을 내걸고 있다. 대부분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이번 전시의 그림들은 남성 작가 특유의 강렬함을 드러낸다.
작가는 '세상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과 공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은. 곧 공허와 상실감에 빠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볼펜의 날카로운 선은 이를 놀랍게도 적확하게 담아냈다. 화면 자체가 극도의 불편함을 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볼펜의 다채로운 표현 뒤 파스텔 색연필 물감 등을 부재료로 마무리해 색다른 질감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작품 20여점이 기다린다.
소년, 종이에 유성볼펜 혼합재료, 125 × 95 ㎝, 1999~2001
◼︎ 15년작업 정리 40여점 선봬, 14일까지 해운대 동백아트센터 | 박영경 기자
김성룡은 붓 대신 볼펜을 든다.실 한 가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볼펜선으로 형상을 만들어가는 쪽. 수천 수만의 볼펜선을 그은 다음에야 그림 한 점 얻을 수 있으니 그의 그림은 오랜 인내를 먹고사는 셈이다.휴지에 쉼없이 볼펜똥을 뱉어내야 하는 건 또하나의 고단함.
그가 해운대 달맞이언덕 동백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대작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보이기는 이번이 세번째.전시는 14일까지 이어진다.
'만행―시각적 사유'라는 테마 아래 전시장에 내걸린 그림은 40여점. 볼펜의 가느다란 선으로 빚어낸 것과 목판화 위에 색연필로 덧칠한 것들이다.몽환적인 분위기로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토해내는 작품들.
이번 전시는 15년여의 볼펜화 작업을 정리해보는 자리.볼펜화의 실험에 나섰던 80년대 중반에서 오늘에 이르는 그림들이 나오고 그것들은 화면의 주제와 형식이 어디서 어디로 옮겨왔는지를 보여준다.그림은 크게 두 갈래.한쪽은 역사의 상흔이나 암울한 현실을 담은 것들이고 다른 한쪽은 사춘기의 일탈행위나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성적 욕망,혹은 마성(魔性)적 본능 따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전시장 1층으로 들어서면 목판화에 색연필로 덧칠한 그림들이 관객을 맞는다.목단을 배경으로 벌거벗은 여인과 사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들. 2층으로 올라가면 '사춘기'연작이 기다린다.사춘기 소년 소녀의 일탈을 담은 것들.화가는 삐딱한 자세로 관객을 노려보는 소년을 통해 사춘기의 '이유있는 반항'을 형상화하기도 하고 벌거벗은 소녀를 통해 사춘기의 성(性)적 고민을 표현하기도 한다.갇힌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들. 3층에선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명성황후 유관순 민영환 등을 소재로 삼은 '한국근대수난사' 연작,벼랑 위에 선 사내나 욕망의 찌꺼기를 모아놓은 '주말'연작 외에 농촌의 고단한 삶이나 환경오염의 현실을 담은 것들도 나온다.
목단꽃, 종이에 혼합재료, 170×123㎝, 1998
◼︎ 김성룡 부산 개인전 4일부터 동백아트센터 | 박영경 기자
김성룡의 그림에는 근현대사의 인물,떠도는 농민,알몸의 여인 등이 있다.개 소 고양이 따위도 보인다.그들은 한결같이 정면을 쏘아보고 있다.그림속 주인공의 눈을 통해 작가는 무얼 응시하는 걸까. 김성룡이 4일부터 2000년 1월2일까지 동백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작가의 부산 개인전은 처음.근작 신작 40여점이 전시장에 나온다.
볼펜화가라는 별명 답게 유성볼펜의 가는 선으로 찬찬히 채워나간 작품이중심을 이루고 2백호 크기의아크릴작품4점과사인펜연필등을활용한것도 선보인다.작가가 응시하는 곳은 상처인 듯하다.수난과 굴절의 근현대사나 한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창백한 기억 같은.
참수된 갑오농민의 머리와 풀잎을 배경으로 민영환을 부각시킨 "근대수난사 연작-민영환"처럼 지난 시절의 그림은 역사의 상처에 주목했다.90년대 중반 이후의 것들은 한 청년이 붉은 목단을 배경으로 바지를 풀어헤친 채 서 있거나(6월 목단꽃) 알몸의 여인이 꽃 낙엽 나무와 중첩되는 형상.시선이 상처난 개인의 내면으로 옮아 있다.
극사실의 화면은 피빛을 머금고 있거나 음울한 청색.그래서 그림은 불길한 악몽 같고 화면속 주인공들은 현실과 비현실을 떠도는 혼령 같다.작가는 "부정하고 싶은,그러나 떨쳐내지 못한" 역사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반문한 뒤 실체는 실체의 흔적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른 듯하다.이런 자기부정은 자멸이 아니라 자기를 찾는 과정으로 읽힌다.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그림에 눈만은 살아 있고 그 눈의 응시는 무의 세계에서 다시 자기를 찾는 증거처럼 보인다.